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 제정된 이후 오늘날까지 77년 동안 20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그동안 우리나라 권력구조는 초기 32년은 4년 중임 대통령제, 중간에 1년은 내각책임제, 다시 44년간은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시행됐다. 중간중간에 7년 단임제와 간접선거제도 있었다.

‘무탈’ 대통령은 3명뿐
이 가운데 임기를 제대로 마친 대통령은 7년 단임 전두환과 5년 단임을 했던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문재인 등 7명이었다. 3명은 장기집권 후 끝이 좋지 않았다. 초대 이승만(12년 집권)은 1960년 4·19혁명으로 미국에 망명했고, 5대 박정희(16년)는 1961년 쿠데타 이후 독재정치까지 하다 1979년 심복에게 피살됐다. 11대 전두환(8년)은 박정희 피살사건을 수사하다가 보안사령관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12·12 내란을 일으켜 실권을 잡은 뒤 제4, 제5공화국 대통령을 했다. 그리고 1997년 뒤늦게 내란죄로 감옥에 갔다. 이밖에 4대 윤보선(1년)은 1961년 5·16 쿠데타로, 10대 최규하(8개월)는 1980년 5·18 이후 전두환에게 대통령 자리를 빼앗겨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18대 박근혜(4년)는 2017년 탄핵이 인용돼 파면됐으며, 20대 윤석열(3년)은 탄핵소추되어 3월 파면여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13대 노태우(내란죄)와 17대 이명박(뇌물수수)은 5년 임기를 채우긴 했으나 퇴임 후 옥살이했고, 16대 노무현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이명박 정권의 검찰수사를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쳤다. 법 위반이나 개정 등으로 사고를 친 대통령 7명의 재임기간은 모두 합쳐 52년으로 우리 헌정사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퇴임 후까지 아무 탈 없이 지낸 대통령은 14대 김영삼, 15대 김대중, 19대 문재인 등 단 3명으로 15년에 불과했다. 결국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대부분 그 자리 때문에 기구한 삶을 보낸 셈이다. 미국의 경우는 236년 48대 대통령 가운데 37대 닉슨이 탄핵 위기에 몰리자 사퇴한 것 외에는 탄핵 당한 사람이 없었다.

권력에 집착한 정치의 순간들
1980년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제에서 반칙을 저지른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1987년 6·10항쟁 이후 여야 헌법개정 협상 때 대통령 직선제 부활은 쉽게 합의했다. 야당은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함께 제시했다. 정·부통령제를 하게 되면 전라도와 경상도가 정·부통령 후보를 하나씩 나누어 선출해 지역대립이 없어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는데 여당(민정당)이 반대했다. 또 전두환은 자신이 7년 단임을 했으므로 개정헌법에 반드시 단임제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야당은 장기집권을 막는 게 무엇보다 급선무인 데다 전두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5년 단임제로)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4년 중임제를 실현하지 못했던 게 가장 아쉬웠다고 김대중은 술회했다. (『역사비평』 2008년 가을호. 김대중 -박명림 대담) 전두환의 ‘단임제’ 고집 때문에 기형적인 헌법이 탄생한 것이다.

‘연립정부’로 내각제 성격 실험
＃ 1997년 11월 3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과 자유민주연합 김종필은 15대 대선을 한 달 반 앞두고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선언했다. 1971년,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낙선했던 김대중은 외연확장이 절대 필요했었는데 DJP연합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자민련에 총리와 장관 자리를 배분해 연립정부를 만들었다. “보수와 진보의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내각제 약속을 지키지 않자 김종필은 3년간 총리를 지낸 후 물러났고, 2001년 DJP연합도 붕괴됐다. 어떤 면에서는 독일의 연립내각 성격을 실험하는 기회가 됐다.

＃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에서 핵심 요직인 검찰총장까지 지냈으나 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틈타 반대당(국민의힘) 후보로 나서서 202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국회에서 절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더불어민주당)과 대화하지 않는 ‘불통’ 대통령으로 앉아 있다가 황당하게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가를 혼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혼란한 정국이 오랫동안 지속될는지, 제7공화국 출발로 개혁의 계기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국회와 정당들, 변화에 대비해야
만약 윤석열의 탄핵이 인용된다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국회와 각 정당은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기초위원회가 내각책임제 성격을 가진 헌법을 기초했다. 그런데 초대 대통령을 맡은 이승만이 대통령중심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갑자기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헌법에는 내각제적 성격을 가진 조항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통령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선출된 제왕’ 노릇을 해오다 보니 파행이 되풀이됐다.

내각책임제는 원래 국왕과 의회 사이의 갈등을 타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권력체제이다. 내각제의 장점은 제도적 유연함이다. 또 의회와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지 않는다. 반면 제도적으로 약하고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제2공화국(1960~1961)과 프랑스 제3·4공화국(1870~1958)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원정부제(二元政府制, dual executive system)는 행정부를 이끄는 지도자가 대통령과 총리로 이원화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통령중심제에 더 가깝지만 내각제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한다. 제도적으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총리는 장관을 지명하게 되어있다. 여당이 의회에서 다수당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야당이 다수당일 때는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 총리가 되기 쉽지 않다. 현재의 프랑스 제5공화국은 주로 대통령중심제를 유지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야당이 총리를 맡는 동거정부(cohabitation)가 출현하고 있다. 동거정부가 되면 사실상 내각제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게 된다. 하여 프랑스의 이원정부제는 누가 의회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통치형태가 교체된다고 할 수 있다. (뒤베르제, 정치학의 이해(제2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전공 교수진. p167. 박영사, 2019.) 의회가 권력의 중심이 되면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

“개헌”공약만 하고 안지켜
여론은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쪽이 우세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先개헌과 後개헌 중 무엇을 택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은 아예 개헌을 언급하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재명은 “개헌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가 대표로 있는 다수당인 민주당은 지난 3년간 개헌과 관련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지금도 개헌 일정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김동연·한동훈·오세훈은 “차기 대통령은 개헌부터 하고 3년 뒤 퇴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믿을 수 없다.

‘최소한 개헌’후 대선을
따라서 필자는 ‘정치혁신’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본다. 첫째, 이원정부제를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만 수정하는 최소한의 개헌을 한 뒤 선거를 치른다. 우리 헌법은 이미 내각제적 요소를 안고 있으므로 총리의 장관 추천 등 법만 잘 지킨다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제와 비슷한 이원정부제를 일단 시행해 본 뒤 다시 내각제로 옮겨간다면 국민적 부담도 덜 수 있다. 둘째, 이번에 합의하게 될 최소한의 개헌 내용에 본격적인 개헌 일정을 적시해 두고, 당선자가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탄핵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개헌의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헌법을 자주 바꾸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세계가 동일 경제권이 된 이 마당에 현재처럼 경직된 개헌 절차는 시대에 맞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자원 빈국 입장에서는 국제정세에 순발력있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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