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일칼럼니스트 / 자기계발서작가

춘추시대 위(衛)나라 영공 때 왕의 총애를 받던 미소년 미자하(彌子瑕)가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얼굴이 고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쁘게만 보였다. 하루는 궐밖에 어머니가 병이 나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시간이 밤중이어서 일반수레는 궁궐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을 속여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병문안을 하고 왔다. 임금의 수레만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튼 날 이 사실을 안 영공은 미자하를 보고 “참으로 효성이 지극하구나. 내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월형(刑:발꿈치 아킬레스를 자르는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마나 급했으면 수레를 타고 나갔을까.”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효자로구나 하면서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얼마 뒤 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다가 탐스럽게 익은 봉숭아를 따서 먹어보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한입 베먹은 복숭아를 왕께 바쳤다. 왕은 이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주다니”하며 매우 기뻐했다. 

이렇게 사랑을 받았던 미지하도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었다. 점점 왕의 애정이 식어갔다. 같은 행동이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놈이 과수원에서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준 놈이다. 그 뿐인가 내 수레를 말도 없이 속이고 궐 밖으로 타고 나간 놈이다. 저놈을 당장 처벌하라.”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같은 행동이지만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사랑과 권력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일시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고사다. 권력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마치 계절과도 같아서 봄과 여름에는 마치 햇살처럼 따뜻하지만 가을과 겨울이 오면 마치 차갑게 변한다. 인간의 감정과 관계도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특히 권력의 세계에서는 더욱 가혹(苛酷)해 보인다. 절정의 사랑을 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미움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어제의 총애가 오늘의 배척으로 바뀌는 일은 역사 속에서 많이 보았다. 

우리는 이 고사를 통해 권력과 사랑의 덧없음을 배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 자체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미자하가 비극을 부른 것은 왕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특정한 권력자나 환경에 의존하는 삶은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반면, 자기만의 독특한 실력과 신뢰를 쌓고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권력자의 총애를 받았으나 끝까지 살아남은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거나 권력의 부침 속에서도 한걸음 물러서서 지혜를 발휘한 사람들이었다. 

여도지죄의 교훈은 옛날이야기를 넘어 오늘날 우리 사화나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권력과 애정은 변할 수밖에 없으며 절정의 순간일수록 더 큰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어떤 관계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따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한 순간의 총애에 들뜨지도 말고, 사랑이 식었다고 절망하지도 않는 자세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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