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이 한 달 반에 이르고 있으나 ‘내란죄 시비’만 계속될 뿐 향후 정치일정에 대해서는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어 국민들이 답답해 하고 있다. 늦어도 3월 말을 전후해서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면 윤석열은 ‘파면’되고, 60일 이내(헌법68조②, 4~5월)에 후임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을 인용하지 않아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다음 대통령들도 계엄을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여기게될 게 뻔하므로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판결해야 한다. 윤석열이 재판에서 질기게 버티다가 불리한 판결이 내려질 듯하면 ‘자진사퇴’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대통령 선거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차기 대선 대비, 개헌 준비해야
하여 ‘불확실’하긴 해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이런 대통령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헌법 개정이다. 국민들은 이런 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돼 ‘불확실’성을 신속히 걷어내고 안정된 체제가 유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의 헌법 개정으로 여야와 국민이 공감할만한 ‘대통령 권력구조’를 택하도록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국민의힘이 현재의 불리한 여건 때문에 ‘내각제’를 주장하고, 민주당은 집권을 ‘따 놓은 당상’으로 여기고 대통령 권력구조 축소에 소극적일 경우이다. 그럴 경우 합의점을 찾기 어렵게 되므로 서로 양보하도록 국민들이 응원봉 시위라도 나서서 합의를 강요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튼튼하고, 잘 나간다는 나라에서 일어난 비상계엄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도 경악했다. 세계 10대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순간에 국격(國格)뿐만 아니라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외교·경제 전문가들은 회복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간신히 목숨줄만 붙어있는 우리나라가 빨리 회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5년 단임제…이미 시효 끝나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77년동안 9차례 개헌을 했다. 평균 7.5년에 한 번꼴이었다. 그런 점에서 1987년 9차 개헌 이후 38년이라는 기간은 긴 세월이었다. 또 단 3차례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개헌이었고, 6번은 정권장악에 이용된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1987년 9차 개헌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져 온 독재자의 출현을 막으려는 것에 중점을 두었으며, 민주주의 정착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5년 단임의 기형적인 대통령제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 국민은 없었다. 여기에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격에 맞지 않는 조항들이 늘어났다. 더 나아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제왕적 권력행사뿐만 아니라 불법적으로 정신나간 비상계엄까지 선포한 대통령을 지켜보아야 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이런데도 한 인물을 처벌하는데 그치고 태연히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세계는 곳곳에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프랑스 등에서 양극단 정치대결이 벌어지고, 중진국들에서도 분쟁과 함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탄탄히 유지해왔던 우리나라도 뜻밖에 12·3내란사태를 맞았다. 그래 전 세계는 한국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지켜보고 있다. 하여 하루속히 ‘불확실’에서 벗어나 ‘확실’한 사회로 나아감으로써 세계의 모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최소한의’ 헌법 개정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일밖에 없다. 이런 노력은 7공화국을 여는 기초도 될 것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개헌 못하면 “사퇴”를
첫째, 국회의원 전원과 각 정당이 국민 앞에서 앞으로 2개월 이내에 최소한의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는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공표해야 한다. 탄핵정국을 가져온 것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잘못도 있었다. 그동안 개헌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선거때마다 “개헌”을 입버릇처럼 내세우고서도 자기 권력 유지나 진영 이익을 먼저 생각해 이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바람에 오늘날 윤석열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앉히게 됐다. 가까운 예로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합의가 가능하다면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임기를 1년 단축해서 개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가백년대계, 경국대전을 다시 쓰는 것인데 특정 임기 1년을 줄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더라도 172석 의석을 활용해 ‘다당제 연합정치’를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까지 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9차 개헌 이후 처음으로 2018년 3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야당(현재의 국민의힘)이 본회의에 불참해 개표도 하지 못하고 폐기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했던 ‘헌법 개정’을 외면하다가 탄핵 위기에 몰리자 2016년 10월에야 개헌을 꺼내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1년 ‘내각제’를 고리로 3당합당을 하고서도 이를 외면했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1997년 같은 ‘내각제’를 약속하고 DJP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없던 일”로 했다. 거대 정당들이 이렇게 지난날 개헌을 미루는 과오를 저질러 내란사태까지 맞았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국민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 물러나야 한다.

국회가 개헌안을 최종 확정하는 기간도 2개월 이내로 해야 한다. 1987년의 9차 개헌때도 6·10항쟁이 끝난 뒤 3개월만에 여야 합의개헌안을 마련했고, 10월에 국민투표를 거쳐 12월에 6공화국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번에는 최소한의 개헌이므로 시간을 더 앞당겨야 한다.

대통령 권한 나눠야
둘째, 선진사회를 향한 제2의 헌법 제정이라는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한다. 문귀만 몇 자 고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통령 중임제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권력구조를 비교연구해야 한다. 또 최소한의 개헌이므로 그밖의 개정해야 할 사항은 2년 이내에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조항을 넣어두어야 한다. 과학기술 발전, 환경문제 등 급변하는 시대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4년에 한 번씩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조항도 신설해야 한다. 개헌을 할 때 모든 조항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적용될 수 있도록 순발력을 가져야 한다. 미국과 프랑스는 수시로 개헌을 해왔고, 독일도 1949년 이후 64회나 개헌을 했다. 또 매번 번거롭게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고도 개헌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데에 있다.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가 상호 협력과 견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총리 추천권을 갖고, ‘여소야대’가 되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검토해야 하다. ‘여대야소’가 되어 연립정부가 구성되지 않더라도 영국처럼 야당이 그림자 내각을 구성하고 정부의 정보를 제공받음으로써 수권(授權)에 대비하고, 협치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내각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짧게 시행됐고, 5·16쿠데타를 합리화 하느라 나쁘게만 평가해 부정적 인식이 남아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대부분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회를 구성한 여러 정당들이 협치로 정부를 운영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을 접합한 제도도 검토해봄직 하다. 총리와 장관에 대해 임명동의제를 도입하고, 국무회의가 의결기구가 되면 내각에도 힘이 실려서 책임행정이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권한을 나눌 수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셋째,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 헌법을 개정하도록 ‘민의’(民意)중심 개헌이 되도록 해야 한다. 9차 개헌때는 8명의 위원이 머리를 맞대고 2개월만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효율성이 강조됐다. 앞으로 있을 10차 개헌도 8~12명 내외로 구성된 헌법개정특위가 2개월 이내에 합의안을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 기한이 다 되도록 합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는 국회의장이 자문위원회의 조언을 받아들여 최종 대안을 결정하도록 한다. 또 각 시도별로 500명 내외로 조직된 국민공청단이 투표로 하나의 대안을 선택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넘겨 확정지어야 한다.

넷째,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축소를 위한 그밖의 과제도 있다. 이번 계엄에서 보았듯이 비상계엄은 선포된지 2시간 만에 국회가 해제를 의결했으나 대통령은 6시간만에 해제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2차 계엄을 우려한 국민들도 많았다. 따라서 국회가 의결하자마자 계엄령이 해제되는 걸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것(헌법71조)은 모순이다. 국무총리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절차(계엄법)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가서열 2위이기도 한 국회의장이 권한대행을 맡도록 해 공정성과 국민의 대표성을 유지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는 모두 투표로 선출된 존재로 ‘이원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정당이 느슨한 조직이어서 대통령이 의원들을 직접 설득하고,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투표하므로 이러한 조건에서 대통령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헌법46조②)고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당론’이 작용해 의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제약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려면 선거제도 개선을 통해 다당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또 윤석열에게서 보았듯이 대통령이 검찰 등 사법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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