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참 예쁘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가을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생각한다. 어떻게 저리 아름다워졌을까. 아름답다는 것은 사실, 결과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고난의 과정까지 포함된 말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가을의 콩이 아름다운 것도 씨앗 한 톨이 봄에 뿌리를 내리고 떡잎을 틔워 작은 돌멩이를 밀어 올리며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고, 봄의 꽃이 아름다운 것은 한겨울 모진 추위를 견딘 나무가 애써 잎을 틔우고 그 힘으로 꽃을 피워냈기 때문이다.

어느새 추워진 가을 날씨에 영광군의 미처 찾아보지 못한 곳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그렇게 무작정 출발해 도착한 곳은 홍농읍 성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지석묘’(支石墓).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그 아래 자리 잡은 성산리 고인돌의 풍경은 매우 신비로웠다. 고인돌 유적은 석기시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세계 고인돌의 40%센트 우리나라에 분포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70만 년 전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이르면 원시 농업 경제 사회라 이름할 만한 단계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다. 농업과 목축업을 생활화한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구리를 주 원료로 주석이나 아연을 섞어 만든 청동기를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농경의 발달로 인한 잉여 생산이 생기면서 사회집단 내부에는 다스림을 받는 자와 다스리는 자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청동기를 사용하는 우세한 지위를 가진 권력자도 나선다.

청동기는 대부분 ‘지석묘’라 불리는 고인돌에서 출토되고 있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식이다. 무덤 속에는 주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넣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무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된다. 더군다나 고인돌은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닌 자연 현장에서 뚜렷하게 대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성산리 지석묘군은 낮은 구릉과 평지가 이어지는 논 가운데 분포하고 있다. 현재는 모두 45기가 분포하나, 주변에 노출된 ‘받침돌’들로 보아 더 많은 지석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남방식과 개석식이 주를 이룬다.

지석묘는 동-서로 길게 열을 지어 있으며, 이 가운데 16기는 1열로 늘어서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가장 큰 것이 길이 560cm, 너비 430cm, 두께 100cm이다. 길이가 300cm 이상인 것은 모두 15기이다. 파손상태가 심한 것도 있지만 대개 40~70cm 두께를 가진 것이 대부분이다. 성혈이 확인된 것은 총 4기이며, 받침돌은 10기에서 확인되는데 하부가 묻혀있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석묘는 선돌과 함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전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며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지석묘는 무덤의 방이 땅 위에 있는 북방식과 바둑판처럼 뚜껑돌 밑으로 조그만 받침돌을 고이는 남방식, 그리고 판석만 놓고 땅 밑에 무덤 방을 만든 개석식이 있다.

전남 서부에만 보이는 ‘중요’ 유적

성산리 지석묘는 성산리 외죽동과 진덕리 상삼마을 일대에 산재해 있다. 이 일대의 지석묘 형식은 지석이 있는 남방식과 지석이 없는 개석식 지석묘가 섞여 있으며 상석의 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괴석형에 속한다. 특히 개석 밑에 지금 볼 수 있는 지석들을 5개 내지 6개로 되어 있다. 지석묘의 배열 상태는 대개 남-북으로 길게 분포되어 있는데 규모가 큰 것이 중앙에 분포한다. 이와 같이 기둥형의 받침돌을 사용한 지석묘는 전남 서부지역에만 보이는 특색 있는 형식으로 학문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본포되어 있지만 한국은 고인돌 왕국이라 불릴 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을 가지고 있다. 아직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고인돌의 마지막 시기를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고 있어 신석기 후반~청동기 시대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고인돌을 축조할 때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많은 인력이 동원되므로 이것은 족장(族長) 등 지배계급들의 묘(墓)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그러나 고인돌은 돌만 남아있고 그밖에 어떤 유물도 없어 추측과 상상에 맡겨야 한다.

성산리지석묘도 박물관을 설립하거나 공원을 조성하여 가족과 함께 즐기는 여가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영광군의 어린이들이 성산리지석묘를 통해 선사시대를 이해하고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위치 :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성산리 산103-2

유창수 기자  news@ygweek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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